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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寶物) 4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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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년 2월 홍건적을 물리친후 귀환하실 때 많은 유품을 안동에 하사하셨다.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 온 까닭???

1361년에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와서 70일간 머물렀다. 안동이 공민왕의 몽진지역으로 선택된 요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안동의 지정학적 조건이 갖는 이점이 있었다. 안동은 태백산맥, 소백산맥의 사이에 있는 웅번(雄蕃)으로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곳이다.

둘째, 후삼국 통일기부터 고려조정에 적극 협력한 안동의 역사적 전통이 국난기에 높이 평가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고려조정에 출사한 안동 출신의 인물이 적지 않았고 공민왕을 호종한 신하 가운데 안동과 관련된 인물이 많았다. 28명의 호종 산하 가운데서 이색(李穡), 홍언박(洪彦博), 홍언유(洪彦猷), 홍사범(洪師範), 류숙(柳淑), 김군정(金君정), 원송수(元松壽), 조운흘(趙云仡) 등이 몽진 이전부터 혼인 또는 관직으로 안동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넷째, 특별히 주목되는 요인은 고려왕실의 혼인관계가 국가 위난기에 안동과 관련하여 중요한 작용을 했다는 점이다. 공민왕은 27대 충숙왕의 아들인데, 충숙왕비 5명(복국장공주(濮國長公主), 조국장공주(曺國長公主), 경화공주(慶華公主), 명덕태후(明德太后, 수비(壽妃))가운데 명덕태후의 소생이다. 명덕태후 남양홍씨는 28대 충혜왕과 31대 공민왕을 낳았다. 그리고 충숙왕의 제5비인 수비는 안동 권씨였고, 공민왕의 제2비인 혜비(惠妃)는 이제현(李齊賢)의 딸로서, 안동인 권보(權보)의 외손녀이다.

다섯째, 공민왕의 외사촌이던 홍언박은 문하시중이었고, 그의 동생 홍언유는 전직 안동부사였으며, 공민왕비 혜비는 안동이 외가였으므로, 당시 몽진지역 결정시 자연히 안동이 가장 적합한 곳으로 평가되어 안동으로 몽진하셨다.

 

 보물(寶物)451호

삼태사의 유물


▲ 주홍목배


▲ 여지금대 1

공민왕의 하사품


▲ 모란금대


▲ 여지금대 2


▲ 옥관자


▲ 은식기와 은수저


▲ 동인


▲ 부채


▲ 혁화


▲ 수단(아래왼쪽:무궁화꽃, 아래오른쪽:복숭아꽃)


▲ 교지

 

 보물각유물전시관개조(寶物閣遺物展示館改造) 유물환안고유문(遺物還安告由文)
정해이월초사일(丁亥二月初四日) 서기(西紀) 2007년  3월22일


▲ 고유문(告由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