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삼태사의 위패와 배향

> 삼태사제향 > 삼태사의 위패와 배향


고려시대는 삼태사(三太師)의 위패를 부(府)의 삼공신묘(三功臣廟)에 모시다가 조선 중종(中宗,1542)때부터 이곳 태사묘(太師廟)에 모셔왔다.

조선 광해군(光海君, 1608) 때에 세 성씨의 대표 권함(權諴), 김태(金兌), 장흥효(張興孝)가 합의(合議)하여 위패(位牌)를 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으로 하여 제주(題主)하여 권오(權晤)가 써서 나란히 모시고 있다.

조선 선조(宣祖) 임진왜란(1592~1598)때 묘직인 안금이(安金伊)가 삼태사(三太師)의 위패(位牌)를 길안면 국란(菊蘭) 계곡 동굴로 모셔 가서 봉향(奉享)하다가 평란(平亂)후 환안(還安)하였다.
이에 안묘당(安廟堂)을 지어 안중(安中)할머니는 달리는 백마(白馬)를 그려 전승(戰勝)을 상징(象徵)하고 안금이(安金伊)는 위패(位牌)로 모시고 삼태사공(三太師公) 향사시(享祀時)에 마련된 음식으로 잔(盞)을 올려 그들의 공(功)을 기리고 있다.

6.25 동란(1950~1953)때는 유사(有司) 장봉섭(張鳳燮)이 생명을 걸고 폭격 속에 들어가 삼태사(三太師)의 위패(位牌)를 모셔와 성곡동 장(張)씨의 광풍정(光風亭)에 안치하였다가 다음해 능동 권(權)씨 보판각(譜板閣)으로 옮겨 모시다가 동란후 1958년에 태사묘(太師廟)가 완공(完工)되고 환안(還安)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향사(享祀)는 고려 성종(成宗, 983)때부터 삼공신(三功臣)의 공덕(功德: 전쟁의 禍免․ 郡을 府로 승격)을 추모하여 부(府)에서 부리(府吏)의 주관 하에 부사(府使)와 부민(府民)들이 함께 제향(祭享)하다가 점차 후손들이 맡게 된 것으로 보며 조선시대부터는 유교적 의례(儀禮)로 체계(體系)를 잡게 되자 명종 때부터 4절사(節祀)(정조, 단오, 추석, 동지)에 제향(祭享)하다가 선조(宣祖,1585)때 부터는 삼성(三姓)의 의론(議論)하여 춘추중월(春秋仲月)인 음력 2월과 8월 중정(中丁)일에 향사(享祀)를 모시며 헌관(獻官)은 삼성(三姓 :金,權,張)에서 윤번(輪番)으로 선임하여 봉제(奉祭)하고 있다.